Game/lol2016. 5. 19. 00:29

출처 :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3866&l=3818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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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란 듯이 통과하고 말겠다.
클라이언트를 실행하고 로그인해, 자신에게 들어온 사용자 설정 게임의 초대를 잠시 머뭇거리다 수락한 피글렛의 머리 속에서 도무지 떠나질 않는 생각이었다.

SKT T1. 
대기업의 이름을 달고 있는 LOL 프로팀의 창단 소식을 들었을 때, 곧바로 입단을 신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은 고티어의 LOL 유저라면 누구나 알아주는 실력파 원거리 딜러다. 그런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어리석고 괘씸한 팀이 있었다. CJ 엔투스, 떠올리면 이가 갈리는 이름이다. 언젠가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노라고 다짐했다. 이 팀에 입단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입단 신청을 한 피글렛에게 돌아온 대답은, 일단은 OK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의 입단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어 있었다.

'입단 테스트라니, 뭘 할 생각이야…'

우선 숙소로 찾아와 팀에서 준비한 입단 테스트를 치르고, 그것에 합격하면 원딜로서 받아 주겠다. 그것이 코치가 내민 조건이었다. 솔로 랭크 점수와 세간의 평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일까. 은근히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었지만, 그것이 어떤 테스트이건 자신의 실력이라면 거침없이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 피글렛은 테스트를 수락했다.
SKT의 숙소에 방문하고, 안에 들어서서는 코치와 대면해 컴퓨터 앞에 앉아 LOL을 켜 초대를 수락한 피글렛은 순간 아연해졌다. 사용자 설정 게임 방 안에 있는 인원은 자신 이외에 상대 팀 한 명뿐이었다.

SKT T1 bengi.

본 적 없는 닉네임이다. 아니, 그것보다도 이게 테스트라는 건가. 혹시 아직 인원이 다 오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어 초대 창을 확인해도 다른 사람은 초대되어 있지 않았다. 테스트라기에 솔로 랭크 게임 관전 정도를 생각했던 피글렛은 혼란스러워졌다. 단 한 명의 적을 두고서, 어떻게 내 원딜로서의 기량을 시험할 생각이지?
등 뒤의 코치가 말문을 열었다.

"그럼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절차는 매우 간단합니다. 챔피언은 이즈리얼을 픽하시면 되고, 상대 팀에 있는 벵기 선수는 누누를 픽할 겁니다."

"게임이 시작되면 두 사람 모두 아이템을 사지 않고 바론 앞에 모이도록 하고, 다 모이면 테스트가 시작됩니다."

"테스트 종목은, 누누에게 신비한 화살을 한 번이라도 적중시킬 것. 이게 답니다."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방금 저 사람이 뭐라고 말한 거지?
입단 테스트라는 게, 누누한테 이즈 Q 한 대 맞추기?

뭐라고 질문을 할 새도 없이 게임이 시작되고, 챔피언 픽 창이 피글렛을 맞이했다. 당혹스러움에 표정을 일그러뜨린 채로 피글렛은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윽고 벌어진 입 사이에서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뭐야, 미친. 장난쳐? 이게 테스트야?'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입단을 시켜 준다면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대체 무엇을 위한 절차인지조차도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난 SKT T1의 원딜러로 들어간다. 그저 이것만 해내면 된다는데, 무엇을 고민할 것인가. 피글렛은 주저없이 이즈리얼의 아이콘을 클릭했다. 
내 솜씨를 제대로 보여줄 시간이군. 
챔피언의 선택 대사가 지금의 자신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 같아 조금 유쾌해졌다. 

블라인드 픽이었기에 상대가 선택한 챔피언은 보이지 않았지만, 진작에 픽을 마쳤는지 오래 지나지 않아 로딩이 시작되었다. 예고했던 대로 상대방의 챔피언은 누누였다. 새삼 자신이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 피글렛은 쯧, 하고 혀를 찼다.

'진짜 어지간한 무빙 고수라도 데려왔나…'

로딩이 끝나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아무런 아이템도 사지 않은 채, 이즈리얼을 움직여 바론 앞으로 향했다. 거의 동시에 누누가 도착했다. 뒤에서부터 말소리가 들렸다.

"시작입니다. 지금부터 Q로 누누를 맞춰 보세요."

이젠 어이없어하는 것도 슬슬 질리는 참이었기에, 주저없이 Q를 날렸다. 누누는 신발조차 사 오지 않은 상태였다. W를 찍었다면 이속 보너스 정도는 받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연 몇 번이나 피할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테스트다. 이 게임단은 원딜이라면 브론즈 티어라도 상관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비한 화살이 날아가는 짧은 시간 동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피글렛의 머릿속이, 순간 새하얗게 비워졌다.

누누가 Q를 피했기 때문이다.

"어어?"

강렬한 의문이 외마디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곧 쿨타임이 돌아오자 재차 Q를 쏘아냈다. 그러나 누누는 별 힘도 들이지 않고 살짝 비껴서듯 피해낼 뿐이었다. 그 다음도, 그 다음도, 그리고 그 다음 번도 마찬가지였다. 갓난아기를 갖고 노는 것 같은 분위기로, 누누는 모든 공격을 어려움 없이 피했다.

부아가 치밀었다.
입단 테스트가 그렇게까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괴이한 꼴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새끼 봐라? 어디 언제까지 피하나 보자. 들리지도 않을 혼잣말을 씹어뱉으며 계속해서 Q를 날렸다. 날리고, 날리고, 또 날렸다. 곧 Q가 더 이상 나가지 않게 되었다. 순간 버그인가 싶었지만 마나를 다 썼을 뿐임을 깨달았다. 마나를 전부 소모할 때까지, 저 누누를 한 번도 맞추지 못했다. 상식을 아득히 뛰어넘는 상황에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휘몰아쳤다. 내 실력은 이 정도밖에 안 됐었나. 이 정도는 언랭도 쉽게 할 텐데. 저 사람은 대체 누군가. 굴욕감을 곱씹으며 귀환을 타고, 다시 마나를 채워 누누 앞에 섰다.

그러나 결과는 언제까지나 같았다.
누누에게, 한 대도 Q를 적중시킬 수 없었다.

생각할 수 있는 선택지가 달리 없었다. 핵 쓰면서 사람 갖고 노는 게 테스트냐고 코치에게 항의했다. 핵이 아니다, 정상적인 플레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믿을 수 없는 소리였다. 저게, 사람에게 가능한 무빙인가. 마치 궤도를 전부 보고 있다는 듯이, 쏘려는 방향으로 이동하기 직전에 멈춰 반대쪽으로 사뿐하게 걸어 빠져나간다. 그것을 벌써 수십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저것이 핵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저렇게까지 무빙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사람이 아니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생각은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마우스가 미끌리는 감각에 정신을 차린 피글렛이 화면 오른쪽 위를 바라보았다.
280분.
창 밖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어느새 등 뒤의 코치도 자취를 감추었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LOL이 맞는지도 이미 구분이 가지 않았다.
지금 난 AI를 상대하고 있는 건가. 상대의 의도를 전부 파악하고, 반드시 모든 공격을 피하도록 되어 있는 AI.
차라리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입단 따위는 포기하고서 돌아가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두려웠던 것은, 내 앞에 서 있는 저 누누가 핵 사용자나 AI가 아닌 진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피글렛은, 자신은 두 번 다시 LOL을 플레이할 자신이 없었다.

바싹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비는 듯한 심정으로, 신비한 화살을 발사했다. 이번에 맞지 않는다면 자존심이고 뭐고 산산조각나 흩어질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힌 채였다.
결과는 알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로 모니터를 바라보지 않았다.
투사체가 날아가는 굉장히 짧은 시간마저도 영겁과 같이 느껴졌다.

치익.


귀를 의심했다. 이즈리얼 Q의 투사체가 명중하는, 너무나도 익숙한 효과음.
고개를 들자 어느샌가 무빙을 멈춘 누누의 체력이 아주 약간 깎여 있었다.


"… 맞았어?"

몇 시간 만에 들어본 자기 자신의 목소리는 목이 쉰 듯이 가라앉아 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그를 깨우듯 문이 소리를 내며 열렸다. 조명이 꺼져 어둑어둑한 방 안에 쏟아지는 빛을 등지고 서 있는 사내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눈이 적응할 때까지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
짝짝, 박수소리가 쥐죽은 듯 조용한 방 안에 울려퍼졌다.
만면에 부드러운 웃음을 띄운, 친근한 인상의 청년을 본 피글렛은, 그럼에도 눈을 마주볼 수 없었다.
그는 눈을 완전히 가리는 안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SKT T1 Piglet과 SKT T1 bengi의 첫 만남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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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실은저너머